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만둣국

점심에 만둣국이 나왔다. 싸구려 작은 냉동만두 서너개가 익숙한 희멀건 국물에 동동 떠 있다.  제딴에는 파도 좀 썰어넣고 애를 썼다만 식판에 담아 먹는 회삿밥이라는게 애를 써본들이다. 요새는 보기힘들어진 프리마가 문득 떠오른다. 인제는 크리머라고 하던가. 호록하고 한술 떠보니 맛이 아리송한게 익숙하다. 휘적휘적 젓가락질 몇 번으로 만두부터 건져낸다. 애초에 공장에서 만든 국물을 끓여 담고는 미리 데쳐놓은 만두를 두어개 던져넣었을 뿐이다. 이걸 만둣국이라고 하면 아침시리얼은 콘푸로스트국이다. 잠깐, 그렇게도 볼 수 있으려나?

만두가 말라간다. 수저가 담긴 것은 이제 아마도 곰탕이고 설탕 커피없는 믹스커피다. 깨작거리던 입질이 조금 바빠진다. 고깃국은 좋아하거든. 그러다 문득 내가 만둣국을 별로 좋아하지 않았다는 사실을 깨달았다. 뜨든- 우물거리는 입속에서 비장한 효과음이 밥알과 꼴깍 삼켜졌다. 나는 알고봤더니 만둣국을 좋아하지 않았던 것이다. 만두도 좋아하고 고깃국도 좋아한다. 좋아하는 두 가지를 섞어놨으니 싫어할리가 없다. 하지만 놀랍게도 나는 만둣국이 별로였다! 그 퍼진 만두가 싫었고 드물잖게 터진 소가 국물 맛에 간섭하면 성질이 났다. 나는 만둣국이 싫었다.

대강 30여년이 걸린 깨달음이다보니 뭉근한 배신감 같은 것 조차 느껴졌다. 아! 앞으로는 만둣국을 사먹지 말아야지. 다짐하건만 아뿔싸, 나는 만둣국을 돈주고 사먹어본 적이 없다. 또 다시 느껴지는 백열전구. 그래, 나는 나의 입맛에 정직했구나. 최소한 만둣국을 앞에두고는 한결같이 정직했구나. 물론 정직만 했지만.

생각지도 못한 든든한 점심을, 싫어하는 만둣국으로 오늘 난 먹었다.