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고향이 아닌 밝고 외로운 그곳은 어떻습니까

 

나는 삼대가 농사짓는 시골은 아니지만 그렇다고 결코 도회지라고도 할 수 없는 어중간한 시골에서 태어나고 자랐다. 물론, 서른의 중반을 짚는 마당까지 한자리에 배고 눕지는 않았다. 뭐 지금은 고향에서 눕고 일어나고 있지만. 고향의 안락함에 어스름해져버린 기억이지만 그래도 잊을 수는 없는 그날들을 되새겨 본다.

분당선 중간 어드메쯤에서 멈추는 그곳은 낮고 비좁은, 그리고 언덕이 답답하던 곳 이었다. 단칸이라고 말하기도 어려운 방을 반으로 또 쪼개서는 책상밑에 다리를 쑤셔넣은 방이었다. 창문 한짝을 둘이 나눠쓰는 아슬아슬한 숨통이 있던 곳 이었다. 낮에는 좁은번화가에 노인들이 넘쳐났고 밤에는 배달 오토바이 신음조차 뜸해지는 곳 이었다. 번화한 곳이었는데 모퉁이 구석구석까지 고독이 들어찬 곳 이었다. 나는 비스듬한 언덕길을 올라 중간에 턱 하고 얹혀진 그 작은방으로 매일 돌아갔다. 숨쉬는 소리까지 들려오는 그곳에서 나는 몸을 누이고 내일을 두려워했던 기억이 선명하다. 길고 좁은 출근 전차. 숨막히는 파티션 속 책상머리. 완전히 다리를 뻗으면 머리가 닿고마는 짧은 침대. 쌓이는 것은 미래에 대한 기대와 희망이어야 했지만 쌓이는 건 값싼 맥주의 빈병 뿐이었다.

 아침과 저녁을 한번에 사곤했다. 어중간하고 오래된 맛 두가지를 붙여서 팔던 삼각김밥 뭉치를 퇴근길 마다 사서 돌아갔다. 저녁은 거르는 날이 제법 많았지만 그건 허기에 못이겨 아침을 두개 먹는 날 정도였다. 나는 그 안에서 사랑만을 꿈꾸며 스스로에 취해 꿈같은 소설을 써내리고 있었다. 덕분에 짧고 간결한 이별통보에 너무도 바삭하게 부러져 버렸더랬지. 새삼 삶의 즐거움은 그때 많이 배웠으리라. 물론 당시의 내가 즐거울 건 쥐뿔도 없었겠지만. 여튼 그 고독한 공간의 빈틈을 빡빡하게 채우던 것은 결국 나의 최면이요 막연한 미래 위탁같은 것이었으리라. 그 도시는 나에게 참 까칠하고 혼란하던 곳이었다고 새삼 되새겨본다. 나는 그런 일들을 겪으며 어렴풋이 마음에 담아뒀는지도 모른다. 사는 것도 죽을 것도 결국 내가 자라난 그곳에서가 아닌가 하는 막연한 기대와 두려움 그런 것 말이다.

술이 돈다. 술에 적신 어질한 피로가 띵하게 머리를 두드린다. 자야겠다. 나의 밤은 짧겠지만  그래도 그 아늑함이 얕지는 않으리란 확신이 든다. 고향집은 그런거니까.